베네치아 본섬에 드디어 상륙... S.Zaccaria역에서 내리게 된다.
섬을 보고 왼쪽이 산 마크로 운하 방향 오른쪽이 아르세날레 방향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거리나 광장을 다른 도시들과 달리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이름으로 표현한다.
Calle보통 다니는 거리를 Via 대신 표현한다.
Salizzada Calle보다 넓은 거리,
Caletta or Ramo Calle보다 좁은 소도로,
Fondamenta 운하를 따라 난 거리,
Rio 운하 Riva 부두,
Campo 산 마르코 광장 이외의 광장,
Corte 3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
지금 서있는 이 곳이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 (Riva degli Schiavoni).
베네치아 본섬 남쪽 산 마르코 운하에 면한 길 중에,
아르세날레(Arsenale) 선착장에서 산 마르로 광장 입구까지 길게 뻗어 있는 부두이다.
성당의 기원은 1346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종교 시설이었는데, 15세기에 재건축 되었다.
이 성당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작곡가 비발디(Vivaldi, 1675-1745)가 죽은,
1745년 조르지오 마사리 (Giorgio Massari)에 의해 한번 더 재건축되어 1760년에 봉헌되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문란한 생활로 성당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 교육시켰다. 그래서 피에타 성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도 피에타 라고 한다.
정문 위에 있는 부조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가 아니고,
아기들을 안고 있으며, 주위에는 천사들이 있다. 버려진 아기들을 거두어 길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피에타 성당 왼편의 로칸다 비발디(Locanda Vivaldi) 호텔은 비발디가 살던 집이 있던 곳 이란다.
직장이 피에타 성당이니 가까워서 좋았으려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
이 동상은 조각가 에토레 페라리(Ettore Ferrari, 1848~1929)의 작품으로,
1887년 5월 1일 호텔 론드라 팰리스 (Londra Palace) 바로 앞에 세워졌다.
1877년 12월 이 호텔 106호에 투숙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이 호텔에서 묵으면서
그의 운명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4번의 첫 3악장을 작곡했다고 한다.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는
서 로마제국 멸망 후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동상 밑의 뒷편 부조는 그가 1859년 팔레스트로(Palestro)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나타내고,
보이는 부조는 그가 이탈리아를 통일한 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베니스에 입성하는 장면을 담고있다.
그가 베니스에 입성한 후 1866년 11월 7일 마침내 베니스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했다.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왼쪽의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와 오른쪽의 감옥을 잇는 이 다리는
1600년~1603년 안토니 콘티노 (Antoni Contino)의 설계로 만든 것이며,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선고받은 죄인은 모두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가게 된다.
죄인이 감옥으로 갈때 이 다리를 지나면서 한숨을 쉬고 탄식했다고 해서 다리 이름이 탄식의 다리가 되었다.
이 다리에 있는 예쁜 무늬 창문은 안에서 밖을 내다 보기는 답답하게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감옥에 갇히게 되면 아름다운 베네네치아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유명한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갔다고 한다.
산 마르코 소광장(Piazzetta San Marco)
산 마르코 소광장은 바다에 면하고 있는 광장이며,
두낄레 궁전과 정면의 도서관(Biblioteca Marciana) 사이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소광장의 바다쪽에 있는 두개의 높은 기둥 위에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날개 달린 산 마르코 사자상과 성 테오도로(Teodoro di Amasea)상이 있다.
산 마르코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마가 복음)의 저자로, 카톨릭교, 동방 정교,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추대 되었다.
산 마르코는 왜 사자로 표현될까?
마르코 복음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설교하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소리를 사자의 모습으로 표현한데서 유래되었다.
산 마르코는 어떻게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을까?
68년 산 마르코는 그의 복음 전파를 막으려는 이교도들에 때문에 순교했는데,
그의 시신은 수백년이 지난 9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성당에서 발견 되었다.
828년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그 시신을 몰래 베네치아로 모셔와서 산 마르코 성당에 안치했다.
그후 산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성 테오도로(Teodoro di Amasea, ?~306)는 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기 전부터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었다.
베네치아의 깃발에는 산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가 앞발로 성경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날개 달린 사자는 두칼레 궁전 외벽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 남아있다.
이 두 기둥은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공식적인 관문이었으며,
베네치아에 공식적인 손님이 없었을 때는 이 기둥 사이에서 도박도 허용되었고,
사형이 집행되던 곳이기도 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은 828년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2명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산 마르코의 유골을 가지고 와서,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829년부터 832년에 세운 성당이다.
11세기 말에 비잔틴 양식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으며, 그후로도 계속 재건축 되었다
비잔틴 양식의 건물이라서 동양적인 향취가 풍겨진다.
동방을 침략할 떄 전리품으로 가져온 물건들을 재건축할 떄 성당에 장식했기 때문에 더욱 동양적 느낌이 난다.
가로등 옆에 보이는 정문 아치 위의 회랑에 있는, 높이 1.6m의 실물 크기의 4마리 청동 말 조각상은
4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에 옮겨 놓은 것을,
십자군 전쟁 중이던 1204년 베네치아로 가지고 와서 대성당 정문 위에 장식했다.
나폴레옹이 1797년 베네치아를 점령하면서 그 청동 말 조각상들은 파리로 보내졌는데,
1815년에 반환 받았다고 한다. 원본은 청동에 금도금한 것으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성당 위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두낄레 궁전과 산 마르코 성당이 처음 세워졌던,
9세기의 산 마르코 광장은 산 마르코 대성당의 앞 마당 정도에 불과했다.
1172년 베네치아의 도제(Doge, 지도자)로 선출된 세바스티아노 지아니 (Sebastiano Ziani)는
바타리오 운하 (Rio Batario)를 메꾸고 광장을 확장했다.
이 공사는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1100/1105 ~1181)와
신성 로마 제국의 프레데릭 1세(Frederick I, 1122~1190) 황제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왼쪽 건물이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 카페 플로리안 (Caffe Florian)
카페 플로리안은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건물 왼쪽에 있으며,
1720년 12월 29일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로 문을 열어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떄 당시의 이름은 베네치아 트리온판테(Venezia Trionfante, 승리를 자랑하는 베네치아)였는데,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 플로리안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괴테, 나폴레옹, 스탕달, 바이런, 바그너, 디킨즈, 마네, 모네, 하이네, 니체, 릴케, 카사노바까지...
가운데 건물이 나폴레옹 윙(Napoleonic Wing of the Procuraties)
나폴레옹이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는 '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프랑스의 작가 뮤제 (Alfred de Musset,,1810~1857)가 한 말이라고 한다.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점령한 후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와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사이에 있던 성당을 허물고 1810년에 그 두 건물 사이를 잇는 이 건물을 신축했다.
시계탑 (Torre dell'orologio, Tower of the clock)
시계탑은 베네치아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1496년~1499년에 세워졌으며,
산 마르코 광장 앞의 대운하 (Canal Grande)에서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시계판의 가장 바깥쪽에는 로마 숫자 1 부터 24가 새겨져 있어서 한 바퀴 돌면 24시간이다.
요즘 우리의 시계는 두 바퀴 돌아야 24시간이지만...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해는 시간을 나타낸다. 로마 숫자가의 안쪽 시계판에는 12가지 별 자리를 나타내고,
시계판의 가장 안쪽에는 해와 달의 변화를 나타내어 조수의 간만도 알 수 있어서 항해하는 선원에게 도움이 되었다.
시계판 위에는 성모 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이 있고,
그 양 옆에는 시간을 알려 주는 표시판이 있는데, 왼쪽은 로마 숫자로 시간을, 오른쪽은 아라비아 숫자로 분을 나타낸다.
그 위에는 날개 달린 사자 산 마르코가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뒷 배경은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나타낸다.
그 위, 종을 울리는 조각상이 있는 부분은 테라차 델 모리(Terrazza dei Mori, 무어인의 테라스)라고 하는데,
1775년에 탑 위에 증축된 것이다.
무어인은 북아프리카에 살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무어인 조각상이 매시 정각에 종을 울린다.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Procuratie Vecchie)
광장의 북쪽에 있는 시계탑 옆으로 12세기에 관리들의 사무실과 거주지 용도의 건물,
2층의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가 세워졌다. 이 건물은 16세기에 3층으로 증축되었다.
산 마르코 캄파닐레 (Campanile di San Marco, St Mark's Campanile)
성당 정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높이 98.6m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캄파닐레 (종탑)가 있는데,
이 종탑에서 갈릴레오가 천체 관측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1514년에 세워졌지만, 1902년에 허물어진 것을 191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허물어질 당시에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의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든 천사장 가브리엘(Gabriel)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종탑 속에는 5개의 종이 있는데, 용도가 제 각각 다르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
1720년에 오픈했다고...
산 자카리아 (San Zaccaria)
지오반니 벨리니의 산 자카리아 제단화(San Zaccaria Altarpiece, 1505)
'성인들과 함께 한, 옥좌에 앉으신 성모 마리아'로 유명한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