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본섬에 드디어 상륙... S.Zaccaria역에서 내리게 된다.
섬을 보고 왼쪽이 산 마크로 운하 방향 오른쪽이 아르세날레 방향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거리나 광장을 다른 도시들과 달리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이름으로 표현한다.
Calle보통 다니는 거리를 Via 대신 표현한다.
Salizzada Calle보다 넓은 거리,
Caletta or Ramo Calle보다 좁은 소도로,
Fondamenta 운하를 따라 난 거리,
Rio 운하 Riva 부두,
Campo 산 마르코 광장 이외의 광장,
Corte 3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

지금 서있는 이 곳이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 (Riva degli Schiavoni).
베네치아 본섬 남쪽 산 마르코 운하에 면한 길 중에,
아르세날레(Arsenale) 선착장에서 산 마르로 광장 입구까지 길게 뻗어 있는 부두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피에타 (Santa Maria della Pieta) 성당 내부
성당의 기원은 1346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종교 시설이었는데, 15세기에 재건축 되었다.

이 성당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작곡가 비발디(Vivaldi, 1675-1745)가 죽은,
1745년 조르지오 마사리 (Giorgio Massari)에 의해 한번 더 재건축되어 1760년에 봉헌되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문란한 생활로 성당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 교육시켰다. 그래서 피에타 성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도 피에타 라고 한다.

정문 위에 있는 부조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가 아니고,
아기들을 안고 있으며, 주위에는 천사들이 있다. 버려진 아기들을 거두어 길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피에타 성당 왼편의 로칸다 비발디(Locanda Vivaldi) 호텔은 비발디가 살던 집이 있던 곳 이란다.
직장이 피에타 성당이니 가까워서 좋았으려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
이 동상은 조각가 에토레 페라리(Ettore Ferrari, 1848~1929)의 작품으로,
1887년 5월 1일 호텔 론드라 팰리스 (Londra Palace) 바로 앞에 세워졌다.

1877년 12월 이 호텔 106호에 투숙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이 호텔에서 묵으면서
그의 운명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4번의 첫 3악장을 작곡했다고 한다.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는
서 로마제국 멸망 후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동상 밑의 뒷편 부조는 그가 1859년 팔레스트로(Palestro)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나타내고,
보이는 부조는 그가 이탈리아를 통일한 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베니스에 입성하는 장면을 담고있다.
그가 베니스에 입성한 후 1866년 11월 7일 마침내 베니스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했다.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왼쪽의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와 오른쪽의 감옥을 잇는 이 다리는
1600년~1603년 안토니 콘티노 (Antoni Contino)의 설계로 만든 것이며,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선고받은 죄인은 모두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가게 된다. 

죄인이 감옥으로 갈때 이 다리를 지나면서 한숨을 쉬고 탄식했다고 해서 다리 이름이 탄식의 다리가 되었다.

이 다리에 있는 예쁜 무늬 창문은 안에서 밖을 내다 보기는 답답하게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감옥에 갇히게 되면 아름다운 베네네치아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유명한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갔다고 한다.
산 마르코 소광장(Piazzetta San Marco)
산 마르코 소광장은 바다에 면하고 있는 광장이며, 
두낄레 궁전과 정면의 도서관(Biblioteca Marciana) 사이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소광장의 바다쪽에 있는 두개의 높은 기둥 위에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날개 달린 산 마르코 사자상과 성 테오도로(Teodoro di Amasea)상이 있다.  

산 마르코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마가 복음)의 저자로, 카톨릭교, 동방 정교,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추대 되었다.

산 마르코는 왜 사자로 표현될까?
마르코 복음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설교하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소리를 사자의 모습으로 표현한데서 유래되었다.

산 마르코는 어떻게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을까?
68년 산 마르코는 그의 복음 전파를 막으려는 이교도들에 때문에 순교했는데,
그의 시신은 수백년이 지난 9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성당에서 발견 되었다.
828년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그 시신을 몰래 베네치아로 모셔와서 산 마르코 성당에 안치했다. 
그후 산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성 테오도로(Teodoro di Amasea, ?~306)는 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기 전부터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었다.

베네치아의 깃발에는 산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가 앞발로 성경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날개 달린 사자는 두칼레 궁전 외벽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 남아있다.

이 두 기둥은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공식적인 관문이었으며,
베네치아에 공식적인 손님이 없었을 때는 이 기둥 사이에서 도박도 허용되었고,
사형이 집행되던 곳이기도 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은 828년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2명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산 마르코의 유골을 가지고 와서,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829년부터 832년에 세운 성당이다.
11세기 말에 비잔틴 양식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으며, 그후로도 계속 재건축 되었다

비잔틴 양식의 건물이라서 동양적인 향취가 풍겨진다.
동방을 침략할 떄 전리품으로 가져온 물건들을 재건축할 떄 성당에 장식했기 때문에 더욱 동양적 느낌이 난다.

가로등 옆에 보이는 정문 아치 위의 회랑에 있는, 높이 1.6m의 실물 크기의 4마리 청동 말 조각상은
4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에 옮겨 놓은 것을,
십자군 전쟁 중이던 1204년 베네치아로 가지고 와서 대성당 정문 위에 장식했다.

나폴레옹이 1797년 베네치아를 점령하면서 그 청동 말 조각상들은 파리로 보내졌는데,
1815년에 반환 받았다고 한다. 원본은 청동에 금도금한 것으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성당 위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두낄레 궁전과 산 마르코 성당이 처음 세워졌던,
9세기의 산 마르코 광장은 산 마르코 대성당의 앞 마당 정도에 불과했다.

1172년 베네치아의 도제(Doge, 지도자)로 선출된 세바스티아노 지아니 (Sebastiano Ziani)는
바타리오 운하 (Rio Batario)를 메꾸고 광장을 확장했다.

이 공사는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1100/1105 ~1181)와
신성 로마 제국의 프레데릭 1세(Frederick I, 1122~1190) 황제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왼쪽 건물이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 카페 플로리안 (Caffe Florian) 
카페 플로리안은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건물 왼쪽에 있으며,
1720년 12월 29일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로 문을 열어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떄 당시의 이름은 베네치아 트리온판테(Venezia Trionfante, 승리를 자랑하는 베네치아)였는데,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 플로리안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괴테, 나폴레옹, 스탕달, 바이런, 바그너, 디킨즈, 마네, 모네, 하이네, 니체, 릴케, 카사노바까지...

가운데 건물이 나폴레옹 윙(Napoleonic Wing of the Procuraties)
나폴레옹이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는 '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프랑스의 작가 뮤제 (Alfred  de Musset,,1810~1857)가 한 말이라고 한다.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점령한 후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와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 사이에 있던 성당을 허물고 1810년에 그 두 건물 사이를 잇는 이 건물을 신축했다.  
시계탑 (Torre dell'orologio, Tower of the clock)
시계탑은 베네치아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1496년~1499년에 세워졌으며,
산 마르코 광장 앞의 대운하 (Canal Grande)에서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시계판의 가장 바깥쪽에는 로마 숫자 1 부터 24가 새겨져 있어서 한 바퀴 돌면 24시간이다.
요즘 우리의 시계는 두 바퀴 돌아야 24시간이지만...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해는 시간을 나타낸다. 로마 숫자가의 안쪽 시계판에는 12가지 별 자리를 나타내고,
시계판의 가장 안쪽에는 해와 달의 변화를 나타내어 조수의 간만도 알 수 있어서 항해하는 선원에게 도움이 되었다.

시계판 위에는 성모 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이 있고,
그 양 옆에는 시간을 알려 주는 표시판이 있는데, 왼쪽은 로마 숫자로 시간을, 오른쪽은 아라비아 숫자로 분을 나타낸다. 

그  위에는 날개 달린 사자 산 마르코가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뒷 배경은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나타낸다.

그 위, 종을 울리는 조각상이 있는 부분은 테라차 델 모리(Terrazza dei Mori, 무어인의 테라스)라고 하는데,
1775년에 탑 위에 증축된 것이다.

무어인은 북아프리카에 살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무어인 조각상이 매시 정각에 종을 울린다.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Procuratie Vecchie)
광장의 북쪽에 있는 시계탑 옆으로 12세기에 관리들의 사무실과 거주지 용도의 건물,
2층의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가  세워졌다. 이 건물은 16세기에 3층으로 증축되었다.
산 마르코 캄파닐레 (Campanile di San Marco, St Mark's Campanile)
성당 정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높이 98.6m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캄파닐레 (종탑)가 있는데,
이 종탑에서 갈릴레오가 천체 관측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1514년에 세워졌지만, 1902년에 허물어진 것을 191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허물어질 당시에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의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든 천사장 가브리엘(Gabriel)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종탑 속에는 5개의 종이 있는데, 용도가 제 각각 다르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
1720년에 오픈했다고...
산 자카리아 (San Zaccaria)
지오반니 벨리니의 산 자카리아 제단화(San Zaccaria Altarpiece, 1505)
'성인들과 함께 한, 옥좌에 앉으신 성모 마리아'로 유명한 성당.

베네치아는 예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도시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인 렉서스 SC430도 베네치아에서 연구원들이 생활하면서 받은 느낌을
차에 고스란히 녹여 놓았다고 한다.

어디서도 볼수 없는 118개의 운하와 400개의 다리로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아름다운 집들과 곤돌라, 수상버스...
조금만 걸어도 바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인듯.

베네치아에는 운하가 주요 교통 도로라서 섬 내에는 자동차는 당연히 없고 자전거도 없다.
오직 수상버스(Vaporetto), 수상택시(Taxi Acquei), 곤돌라(Gondola), 곤돌라 비슷한 트라게토(Traghetto)등의 수상 교통만 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내다 보니 전망이 역시 멋지다.
이쪽 전망은 베네치아 섬쪽 전망.

이쪽은 역시 숙소에서 본 전망인데
멀리 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ATCV(Azienda Consorzio Trasporti Veneziano),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을 관리한다.
베네치아 수상버스(비포레또), 리도섬에서 버스, 본섬에서 Mastre역으로 나갈 때 버스를 이용 할 수 있다.

이용권을 구입하면 칩이 내장된 종이로된 카드를 주는데 
저 기계에 대면 개시가 되서 시간을 카운트 한다.
본섬과 Mastre역을 이어주는
자유의 다리를 달리는 기차.
로마광장 (Piazzale Roma, 피아찌레 로마).
본섬 버스 터미널, 버스를 타고 오게 되면 만나는 풍경.
베네치아는
567년 훈족의 습격을 피해온 이탈리아 본토 룸바르디아 사람들이,
베네치아만에 있는 척박한 석호 주변을 간척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점차 마을이 커지면서 697년에는 최초의 도제 (Doge, 지도자)를 선출하고,
동로마제국 황제의 승인을 받아 자치를 시작한다.

8세기에는 베네치아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을 설립해서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점령 당할 때 까지 1,000년을 이어왔다.
11세기에는 십자군 원정 기지가 되었으며, 십자군 전쟁 중 동방에서 약탈해 온
금은 보화로 부를 축적했고, 또 이 전쟁에서 승리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부유한 해상 도시국가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국제 무역로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지면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개신교와 카톨릭교의 분쟁에서 개신교에 유리하게 중재를 했다고,
1610년에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1797년에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었으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맺은
캄포 포르미오 조약 (Treaty of Campo Formio)에 의해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 양도했다.
나폴레옹이 패한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1866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로마광장 (P.le Roma) 수상버스 탑승장
산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으로 가기위해 수상버스를 탑승했는데
대운하(Canal Grande, 카날 그란데)로 가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곤돌라 축제로 대운하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리도섬을 왕복하는 보트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 (San Giorgio Maggiore)
산 조르지오 마조레섬에 있는 성당으로,
원래 자리에는 8~9세기에 세워진 산 조르지오 성당이 있었다 한다.

982년 산 조르지오 마조레섬 전체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기증되었다.

현재의 산 조지오 마조레 성당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에 의해 1566년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1580년까지 완공되지 않아, 그의 설계대로 1610년에 완공되었다.
종탑, 도서관, 산 마르코 소광장, 산 마르코 대성당, 두낄레 궁전
왼쪽 탑이 산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종탑,

종탑 앞의 흰색 3층 건물은 옛 조폐국, 제카(Zecca)이며,
그 옆이 국립도서관인데, 현재는 제카도 국립 도서관이다.

오른쪽 Coin광고가 걸린 건물이 9세기에 건설된 두낄레 궁전으로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Doge)의 관저겸 정부청사였다.
도서관과 두낄레 궁전 사이에는 산 마르코 소광장 (Piazzetta San Marco)이며
두 개의 원주위에 베네치아 수호 성인의 조각이 있다.

두낄레 궁전 뒤쪽에 보이는 돔은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
베네치아를 휩쓴 페스트 때문에 베네치아 인구의 거의 1/3 이 죽자,
1630년 10월 베네치아 의회는 페스트가 사라지면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신의 가호 덕분인지 서늘해진 날씨 덕분인지 페스트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성당 설계를 공모했는데 무명의 건축가 Baldassare Longhena의
커다란 돔과 독특한 8각형의 성당 설계가 당선되어 1631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반백년이 지난 1682년에 오픈했으나 모든 공사가 끝난 것은 1687년이었다.

매년 11월 21일 의회에서는 이 성당을 방문해서 성모 마리아를 알현해 왔는데,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페스타 델라 마돈나 델라 살루테(Festa della Madonna della Salute)라는 축제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푼타 델라 도가나 (Punta della Dogana)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 앞에 배가 정박되어 있는 건물로 옛 베네치아 공화국의 세관 건물.
베네치아 공화국은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는데, 옛 세관은 대운하의 초입에 위치해 있어,
산 마르코 부두를 드나드는 배에 실은 모든 물건들에 관세를 부과했다고 한다.

관세 포탈 방지의 목적으로 세운 감시탑은 14세기에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탑은 1690년에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감시탑 위에 있는 조각상은 두 아틀라스(Atl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구를 짊어진 거인)가
어깨 위로 받치고 있는 지구 위에 포르투나 (Fortuna) 여신이 미풍에 흔들리는 돛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두 아틀라스와 포르투나 여신은 청동 조각상이고, 지구와 돛은 금도금 되었다.

그러나 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쇠퇴하는 운명을 막지는 못했다.
막강했던 해상 무역권도 영국과 네델란드로 넘어가게 되고,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어 공화국이 멸망하게 되었다.

피렌체(영어명 플로렌스, Florence)에서 베네치아(영어명 베니스, Venice)로 가는날...
기차는 R등급으로 13.15유로밖에 안하는 가격, 정말 저렴하니 맘에 든다.

단점은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 가면서 좀 헤멨다.

Firenze에서 출발해서 Prato에서 갈아타고,
Bologna에서 한번 더 갈아타야 하는데 표를 봐도 알수 없는 내용이다.

Prato가 피렌체 다음 정거장으로 20분정도 거리 였는데
모르고 그냥 지나쳐서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한시간을 달려서 Lucca까지 간듯하다.
그래서 다시 Prato로 돌아왔던...

이탈리아 기차는 좋은게 그냥 내려서 반대로 오는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 (아마도)
바리에서 로마, 로마에서 피렌체 가면서는 갈아탄 기억이 없어서 더 헤멨는지도...

Venezia Mastre행 티켓.
우리가 잡을 숙소가 Venezia S.Luccia역 이전 Venezia Mastre역 길건너에 있는 지후네 민박이다.
Prato Centrale역 기차 스케줄
저 보드만 잘 봐도 기차 타는데는 문제가 없다.
Bologna Centrale역
숙소 지후네 민박에 도착.
Venezia Mastre역이 바로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이 정말 멋지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 크로스.

이탈리아는 인도나 이집트 처럼 찌는 듯이 덥지 않다는 것도 이유지만
목이 마르면 거리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정수시설을 거쳐서 공급되는 것이라 맘껏 먹어도 된다.
물값 때문에 고민 할 걱정은 없다.
이탈리아 현지인들은 주로 탄산수를 사서 먹는다.

숙소 파바로티 하우스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Firenze S.M.N.)에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피렌체가 큰 도시가 아니어서 시내 관광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어제 야간 투어하면서 이미 피렌체 시내 지리를 익혀놓아서
오늘은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숙소앞 거리 풍경.
1인승 자동차다.
쓱 하고 지나갔는데 계속 걸어가다보니 앞에 주차해 놓았다.
산조반니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피렌체의 세례당으로 11~13세기에 지어졌는데 대리석으로 전체가 덮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8각형 건축물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 피렌체의 수호성인 산 지오반니(San Giovanni)에게 바쳐진 것으로
두오모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성당으로 이용되었고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천국의 문 (Gates of Paradise)
산 조반니 세레당에는 3개의 청동 문이 있는데 하이라이트는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으로 알려진 로렌조 기베르티의 청동문이다.
이 문은 미켈란젤로가 이름을 붙인 것으로 그는 이 문을 처음 보고 '이 문은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옳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참새가 비둘기처럼 도망도 안간다.
베키오 궁전 앞의 미켈란젤로 다비드 상
란찌회랑(Loggia dei Lanzi)
회랑에는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일화를 표현한 조각상이 있다.
인체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다.

사빈느 여인의 납치(The Abduction of the Sabine Women, Giambologna 작품)
메두사의 목을 베어 든 페세우스(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1554년, Benvenuto Cellini 작품)
우피치 광장 (Piazzale degli Uffizi)
미술관 기둥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단테 알리기에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등의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인사가 조각되어 있다.

우피치 미술관을 구경하기 위해 한시간 정도 기다리며 서있었다.
광장으로 깜찍한 미니버스도 지나다닌다.
드디어 티켓을 구입했다.
사실 예약을 해놓고 돌아다닐까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냥 입장하게 되었다는...
내부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라 구경만 하다가
베키오 다리가 보이는 창가에서 잠시 아쉬움을 달랜다.
우피치 미술관 옥상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는데
두오모 쿠폴라와 지오토 종탑, 베키오 궁전이 눈에 들어온다.

두오모 쿠폴라를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보인다.
지오또의 종탑 (Campanile Giotto)
높이 85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은 1334년 지오또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하여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어 질식할듯한 규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두오모 성당,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깜빠닐레)이
식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
1298년에 착공하여 몇 번에 걸친 개조 공사를 통해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540년에 코시모 공작 1세의 명으로 바사리가 내부를 개조했다.
일찍이 피렌체 공화국(토스카나 공화국)의 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오른쪽 입구로 계단을 올라가면 대청으로 들어서게 되며,
대청 양쪽 벽면에는 바사리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장면이 있다.
3층에는 기를란다요의 로마 영웅들을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그밖에도 마키아벨리 초상화, 프란체스코 1세의 방, 지구의 방 등
옛날 피렌체의 부와 힘을 느끼게 하는 유물들이 많다.
우피치의 다른 창문으로는 우피치 광장을 전망할 수 있다.
저 골리앗 크레인은 이래저래 사진찍는데 방해물이다.
산타 크로체 교회 (Chiesa di Santa Croce)
프란체스코회의 장대한 교회로 교회 앞에는 단테의 기념비가 큼직하게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피렌체와 관계가 있는 위인들의 묘와 기념비가 무려 276개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의 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Complesso di San Firenze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궁전 왼쪽의 조각상은 넵튠.
두오모 성당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두오모는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피렌체 공화국과 길드가 함께 지은 것으로 1292년에 착공, 1446년에 이르러 완공된 피렌체의 상징물이다.

106m의 높이인 대원개(Cupola, 쿠폴라)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되었는데
3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이며 성당 왼쪽 입구에서 463계단을 올라가
대원개의 옥상에서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장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는데
원개의 천장에는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이 프레스코 형식으로 그려져 있고
제단 왼쪽으로는 그의 미완의 대작인"피에타"가 있다.

흰색과 핑크, 녹색의 대리석으로 된 외관은 장엄하면서도
꽃의 산타 마리아라는 명성에 걸맞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지오또의 종탑 (Campanile Giotto)
종탑쪽에 입구가 있어서 들어갈려고 했는데
쿠폴라에서 나오는 출구였다. 입구는 반대쪽으로 가야한다.
몰래 들어가도 일방통행이라 다시 나와야 한다.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8유로 내고 올라갔다.
463계단을 걸어서 오르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쥰세이와 아오이도 이곳을 오르지 않았던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성당 내부를 볼 기회가 있다.
천정 프레스코화는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으로 후에 주카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드디어 쿠폴라 위에 올라서 본 풍경이다.

서쪽.
지오또 종탑과 두오모 성당 지붕
사람들이 정말 개미같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Santa Maria Novella)
1470년, 알베르티가 완성한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눈부신 걸작 그 이상이었다.
엄밀히 말해 정면 모두가 그의 작품은 아니다.
알베르티의 최대 과업은 고딕양식으로 설계된 하층 위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상층을 올리되,
두 층이 상충되지 않도록 조화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는 상층과 하층 사이에 긴 띠 모양의 고미다락을 얹었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코린트식 기둥을 아랫층에 네 개 덧붙였다.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시키는 꼭대기의 삼각형 팀파눔(tympanum, pediment 삼각형 )에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상징하는 태양이 그 강한 햇살을 뻗치고 있다. 팀파눔 아래 새겨진 글씨는 다음과 같다.
                                                         
IOHAN(N)ES ORICELLARIUS PAU(LI) F(ILIUS) AN(NO) SAL(UTIS) MCCCCLXX
(요한네스 오리첼라리우스, 파울리 필리우스, 안노 살루티스, 1470 - 파올로의 아들, 죠반니 루첼라이, 1470년 구원의 해에)

바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후원해,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완성시킨 루첼라이 가문을 나타내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루첼라이 가문의 문장은 교회 곳곳에 새겨져 있는데,
깃털 달린 다이아몬드 반지라든가,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배 등이다.

알베르티는 전체적으로 흰 색과 녹색의 대리석을 사용해서 기존 하층과 균형을 맞췄다.
그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상층 좌우에 붙인 소용돌이 장식(volute/scroll)이었다.
중앙 나베(nave, 신랑-교회당 내부에서 세로로 길게 뻗은 복도) 지붕은 높고,
그 양쪽 지붕은 낮아서, 정면에서 보면 부자유스러웠기에,
S자로 굽은 화려한 소용돌이를 좌우에 갖다 붙여 높이 차를 보완했던 것이다.

알베르티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 처음 시도한 이 멋진 장식은
이후 토스카나는 물론 전 이탈리아 교회의 장식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알베르티는 건축, 회화 등 예술의 근간은 수학이라고 생각했다(회화론).
컴퍼스로 재고, 대칭, 비례를 통해 건축이 이뤄졌으니 ‘숫자’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위대한 건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음악 속에서 수학을 발견했으니, 하프 현의 길이와 숫적 비례 등이 그렇다.
서양의12음계는 12√2라는 무리수를 사용하는 ‘12평균율’이라는 숫자적 약속이며,

갈릴레오는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인 동시에 류트 연주가였다. 
그는 “신이 우주를 기록한 언어는 바로 수학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건축과 음악이 그렇다면 회화에서의 수학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일대 혁명으로 등장한 <원근법>에서 구체화되는데,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내벽을 장식한 마사치오의 프레스코화, <삼위일체/Trinity>는
바야흐로 첫 원근법이 시도된 그림으로 미술사에서 빼놓지 않고 다뤄지는 걸작이다.

북서쪽.
산 로렌조 성당 (Basilica di San Lorenzo) 
성당 주변엔 재래시장인데 가죽제품이 유명하다.

그 뒷편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누볼라역 (Firenze S.M.N.)
북동쪽.
동쪽.
피렌체의 시나고그 (Sinagoga di Firenze)
밝은 파란색 돔이 눈에 띄는 건물로 1874년에 착공해서 1882년에 완공된
피렌체 유태인의 집회당인 시나고그, Tempio Maggiore라고도 하며, 아주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남동쪽.
산타 크로체 교회 (Chiesa di Santa Croce)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aelangelo)이 언덕 위로 보인다.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Basilica di San Miniato al Monte)
미켈란젤로 언덕 근처에 있는 성당. 정면은 로마네스크 특징인 기하학적 대리석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내부에는 모자이크와 많은 예술품이 있고, 성당 뒤쪽으로 공동묘지가 있다.
남쪽.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바르젤르 국립박물관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1255년 무기창고 겸 요새로 지어진 고딕 양식의 궁전 안에 있는 바르젤로 박물관은
1965년까지 한동안 관공서 건물과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초기작품과 도나텔로, 첼리나, 잠볼로냐, 등
피렌체에서 가장 훌륭한 르네상스시대 대가들의 조각품이 소장되어있다.
남서쪽.
피티궁전 (Palazzo Pitti)
1448년 은행가 루카 피티(Luca Pitti)가 위세등등한 라이벌 가문인
메디치가(家)를 누르려고 짓기 시작하였으나 건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그의 사후 메디치가가 매입하였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다고 추정된다.

원래는 현재의 규모보다 작게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소유권이 메디치가로 이전된 후 1549년에 확장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확장되고 개조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피렌체가 이탈리아의 수도였을 시절에는 로레인(Lorraine) 왕조와 사보이아(Savoia) 왕조의 저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피티 궁전에는 여러 개의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팔레티나(Palatine) 갤러리는 대공의 개인적 수집품부터
15~17세기 티치아노(Titian), 라파엘(Raphael), 루벤(Ruben) 등 유명한 화가들의 걸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현대 미술 갤러리(Gallery of Modern Art), 은 박물관(Silver Museum), 의상 갤러리(Costume Gallery),
마차 박물관(Carriage Museum), 자기 박물관(Porcelain Museum) 등 재미있는 박물관이 있다.

궁전 정원인 보볼리 가든(Boboli Garden)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 속한다.
메디치 가문이 피티 궁전을 산 후인 1549년 트리볼로(Tribolo)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르네상스식 정원으로 숲, 가로수길 사이로 조각상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로마는 밤낮으로 16시간씩 걸어다니느라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정든 로마를 뒤로하고 피렌체로 떠난다.

숙소에서 보이는 테르미니역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200년 전통의 파씨
2유로에 3가지 아이스크림을 고를 수 있는데
지금껏 먹은 아이스크림중에 젤로 맛있다.
피렌체 도착 (Firenze Santa Maria Novella)
피렌체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상업중심이었다. 바로 막강한 메디치가(家)의 근거지가 바로 피렌체였던 것이다.
메디치가는 돈에만 집착한 돈벌레 집안은 아니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 작품들을 수집하고,
유명한 예술가들을 후원해 그들로 하여금 많은 작품을 낳게 도왔다.
메디치가가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고 유럽의 중세암흑기는 좀 더 길어졌을지 모른다.
메디치가는 그야말로 인류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저녁을 먹고 야간투어를 나서는데 숙소 주인 아저씨가 가이드를 해주었다.
가는길에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쓰지 않고 부드럽다.
주인 아저씨가 해병대 출신이라 걸음이 무척 빠르다.
어느새 산 로렌조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을 지나 도착한

산조반니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빨간지붕의 두오모 성당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바로 앞에 있는
피렌체의 세례당으로 11~13세기에 지어졌는데 대리석으로 전체가 덮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8각형 건축물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 피렌체의 수호성인 산 지오반니(San Giovanni)에게 바쳐진 것으로
두오모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성당으로 이용되었고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3개의 청동 문이 있는데 이 세례당의 하이라이트는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으로 알려진 로렌조 기베르티의 청동문이다.
이 문은 미켈란젤로가 이름을 붙인 것으로 그는 이 문을 처음 보고 '이 문은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옳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지오또의 종탑 (Campanile Giotto)
높이 85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은 1334년 지오또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하여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어 질식할듯한 규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두오모 성당,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깜빠닐레)이
식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Hotel Pensione Pendini
신시장 로지아 (Loggia del Mercato Nuovo)
멧되지가 상징인 시장으로 16세기에 메디치의 코시모 1세의 명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죽늘어서 있는 시장이다.
보통 '밀짚시장' 이라 불리는데 예전에 근교에서 생산되는 밀짚 세공품을 팔았기 때문이란다.
베키오 다리 위에선 연주가 한창이다.
다들 앞에 앉아서 연주를 감상하는데 분위기 좋다.

뒷편의 동상은 벤베누토 첼리니, 피렌체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 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고고...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9살의 단테가 이 곳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45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로 알려져 있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1593년에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하였고
대신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세들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베키오 다리의 금세공 상점들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다.
아르노강(Fiume Arno) 너머로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aelangelo) 
광장 중앙의 다비드상은 모조품이다.
2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이용해
2년에 걸쳐 제작한 다비드상은 처음에 시뇨리아 광장에 놓여져 있었으나
파손의 위험때문에 산마르코광장에 있는 아카데이마 미술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피렌체 야경
주변에 몰려있는 베키오 궁전, 두오모, 산타 크로체 교회등과
아르노강에 비쳐지는 베키오 다리의 반영은 정말 예술이다.
산타 크로체 교회 (Chiesa di Santa Croce)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두오모)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Piazzale degli Uffizi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메디치가의 사적(私的)소유 예술품만으로 차려진 미술관

칼자이올리 거리 (Via Dei Calzaioli)
두오모와 시뇨리아 광장을 이어주는 거리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궁전 앞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공화국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의 회전목마
아이스크림 1유로.
나중에 피렌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했지만
모두 3유로 이상이었다.
Chiesa di San Frediano in Cestello
베스푸치 다리(Ponte Amerigo Vespucci) 근처 강변에서
연주를 들으며 시원하게 맥주한잔.

로마는 주간 야간으로 쉴틈을 주지 않는다.
주간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쉬면
야간투어를 나가야 한다.
하루에 16시간은 걸어다니는 것 같다.

오늘은 로마 시내 야간투어다.
오전에 1일 교통권을 구매해서 따로 티켓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건 마음에 든다.
중간에 한번은 무단승차를 하는데 야간이라 티켓 검표 직원들 퇴근했을거라며 걱정 말란다.

숙소를 나설때면 항상 예쁜 간판이 반겨준다.

테르미니역에 집결해서 지하철을 타고 콜로세움으로...
콜로세움 (Colosseum)
로마 제국 시대에 세워진 가장 큰 원형 경기장으로, 영어로는 콜로세움(Colosseum)이라고 하며,
우리에게는 이 영어 이름이 익숙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콜로세오(Colosseo)라고 한다.

콜로세오의 정식 이름은 라틴어로 플라비움 원형 경기장이라는 뜻으로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Amphitheatrum Flavium)이며,
플라비움은 이 경기장을 만든 로마 제국의 플라비아누스 황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h of Constantine)
콜로세오와 포로 로마노 사이에 있는 이 개선문은,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막센티우스 황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로마 제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여 315년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로마로 올 때는 이 개선문을 통과해서 들어 왔다고 한다.

높이 21m, 너비 25.7m인 이 대리석 개선문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업적과 전투 장면이 묘사된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코린트식 원주 위에 있는 앞과 뒤 8개의 조각상과 부조는 옛날의 건물에서 떼어서 이 개선문에 붙여 놓은 것이다.

개선문의 옆에도 전투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명문도 조각되어 있다.

정면과 후면에 코린트 양식의 원주들이 4개씩 모두 8개가 세워져 있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세계 최대 에투알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포로 디 트라야노 (Foro di Traiano)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Monumento Nazionale a Vittorio Emanuele II)
불가리아 정교회 성당
코린트식 기둥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원래 1646년 ~1650년에 건축된
카톨릭 성당 (Chiesa dei Santi Vincenzo e Anastasio a Trevi)이었는데,
2002년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불가리아 정교회에 이 성당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에,
현재는 불가리아 정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트래비 분수  (Fontana di Trevi)
뒤돌아 어깨넘어로 동전 하나를 던지면 다시 로마로 오게되고, 
둘을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개를 던지면 이별을 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곳.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
17세기에 교황청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계단의
원래 이름은 트리니타 데이 몬티 계단 (Scalinata della Trinita dei Monti)이다.
난파선 분수 (Fontana della Barcaccia, 바르카치아 분수)
바르카치아는 '오래된 배'라는 뜻이다.

교황 우르바노 8세 (Urbanus PP. VIII, 1568~1644)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반쯤 가라앉은 배의 모습이다.

로마의 티베레 (Tevere)강변의 둑이 완성 되기 전에는 강이 자주 범람되었는데,
특히 1598년에는 아주 큰 홍수가 나서 스페인 광장에 1m 가까이 물이 차올라 와서
난파된 배까지 발견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난파된 배를 형상화한 분수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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